<캔터베리 이야기> 블로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블로그의 주인장은 저, THE HOST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 곳에는 제가 제프리 초서씨와 함께 캔터베리로 가는 순례자들을 동행하며 주워들었던 이야기들, 또 그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소감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자기소개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안내를 해 드릴텐데요,

저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으시면 THE HOST 방으로,
여러분이 잘 아시는 책의 저자인 초서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CHAUCER 방으로,
제가 만난 인물과 그들이 각각 해준 이야기에 대해 궁금하시면 그들의 직함(THE KNIGHT, THE MAN OF LAW, THE WIFE OF BATH, THE OXFORD SCHOLAR, THE PARDONER)이 달린 방으로 직접 방문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저와 함께 즐거운 순례길을 떠나봅시다! 1. THE HOST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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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ST를 소개합니다.  (8) 2010.06.06



블로그 독자 여러분께,

여러분 안녕하세요. ‘캔터베리 순례 여행길 따라가기’ 프로젝트의 총괄자인 여관집 주인, The Host라고 합니다. 일단 저의 소개부터 간단히 해 드리지요. 저는 현재 미국 모 대학에서 영국 중세 문화사 및 중세 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어니스트 포스터(Ernest Poster) 교수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얼마 전 극비리에 진행된 매사추세츠 프로젝트(The Massachusetts Project)를 통해 인류 최초의 시간 여행 기기가 개발된 바 있지요. 이 기계에는 놀랍게도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 현재, 미래 뿐 아니라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까지 넘나들어 여행 할 수 있게끔 하는 어마어마한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저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중세문학을 대표하는 학자로서, 1386년경 초서(Chaucer)가 그려낸, 캔터베리로 향하는 순례길을 직접 그 시대로 돌아가 그곳의 순례자들과 함께 걷게 되는 특권을 얻게 되었지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그 많은 순례자들에게 이야기 게임을 제안하게 될 여관집 주인이 된 것이지요! 정말이지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직접 중세시대의 사람들, 특히 영문학의 아버지인 초서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기 위해 우선 3개월간 집중 중세식 몸가짐 수업 및 중세 영어 발음 수업을 들은 바 있습니다. 제 자신의 옷차림 또한 중세 시대 사람들 가운데서 튀지 않게끔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라고 의상 관계자들에게 지령을 내렸습니다.

중세 시대로 돌아간 저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익숙하신가요?

A handsome man our host, handsome indeed,
And a fit master of ceremonies.
He was a big man with protruding eyes
-- You'll find no better burgess in Cheapside --
Racy in talk, well-schooled and shrewd was he;
Also a proper man in every way.
여관 주인은 잘생긴, 매우 잘생긴 남자였고
모임을 주관하기에 알맞은 사람이었다.
눈이 툭 불거진 덩치 큰 남자로
칩사이드(Cheapside)의 최고의 주민이었다.
활달한 말투에 아는 것도 많은 똑똑한 사람이었고
모든 면에 있어서 행실 바른 신사였다.

하하, 제 자신에 대해서 이런 말을 적으려니 다소 민망하군요. 아무튼 앞으로 여러분이 보시게 될 제 모습은 이렇답니다. 후대에 저런 묘사로 남을 수 있다니 기쁘군요.

자, 이제 여행을 떠날 일만 남았군요.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초서가 그리고 있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에 대한 그의 유머러스하고 애정 어린 묘사,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의 개성 및 그들 각자의 계급, 성격에 어울리는 이야기들로 현대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요. 초서는 estate satire를 구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묘사하는 모든 종류의 등장인물들을 교훈적이거나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그려내기 보다는, 일종의 거리감을 두고, 그들이 스스로의 입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하게끔 만들고 있지요. 어찌 보면 매우 현대적인 감성을 가진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직접 캔터베리 순례자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는 그들 모두를 초서가 그랬던 것처럼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지 궁금하군요.

저는 이 블로그를 통해 제가 캔터베리 순례길에서 만난 여러 순례자들의 이야기들을 보다 생동감 있게 정리하고, 이렇게 그들로부터 갓 들은 따끈따끈한 이야기들에 대해 현대적 비평을 시도해 보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각 이야기에 제 나름의 별점평가를 매겨보겠어요. 자, 그럼 여행을 떠나 볼까요? 이 흥미로운 여행길을 저와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2010년 5월
The Host가 되어 너무나 기쁜
E. Poster 교수 씀


2. CHAUCER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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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 블로그입니다 :-)  (3) 2010.06.06


안녕하십니까, 순례자 여러분.

우리 Host와 함께 이번 캔터베리 사원으로 성지 순례 가는 길에 함께 하려고 하는 나는 이 시대 영어의 정착을 바라며 인간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탐구하고 싶은 작가 Chaucer라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는 저의 초기 작품으로서, 후원자 존 오브 곤트의 부인 Blanche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작품인 The Book the of Duchess 혹은 이태리를 여행하며 쓴 책 Troylus and Criseyde, De Consolatione Philosophiae 등에 대해 들어보셨거나 읽어보신 분이 계실 줄로도 압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토마스 베켓 성인의 유골이 안장되어 있는 켄터베리 사원으로 떠나기 위해 이 곳 서더크의 타바드 여관에 모여 있지요. 저는 지금 매우 흥미롭게 여러분들을 지켜보다가 한 말씀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들 한 분 한 분은 다양한 신분계층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정말 개성이 넘치고 또 흥미로워 보일 뿐만 아니라 성지순례를 가는 동안 지루함을 달래줄 많은 재미있고 유용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그런 즐거움에 누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이야기들을 듣고 그것들을 글로 엮어, 하나의 이야기집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아까 Host도 이야기했듯, 가장 좋은 이야기를 한 분에게 이곳 여관에 다시 돌아왔을 때 무료로 값진 술과 식사가 대접됨과 동시에 또 여러분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책으로 기록되어 역사 대대로 남게 될 것이니 이 또한 즐거움이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모두 잘 기록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만, 작금의 독자들에게 많은 호응과 인기를 얻기에 충분한 여러분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완결된 하나의 훌륭한 이야기 모음집이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하나의 큰 개괄적인 서문에서 우선 화자 여러분들의 인물, 복장, 좋아하는 음식, 언행 등 다양하게 소개함으로써 앞으로 나올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과 이야기 성격에 대한 예측도를 높이고자 하며, 여러분들 간의 유사성 보다는 각자 성격과 모습에 맞게 기대되는 스타일이나 음조, 가치관의 대립 등을 충분히 살려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보면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준비하는 이 순간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뛰고 즐겁습니다.

이 순례를 함께 떠나며, 순례자 여러분의 건강과 즐거움과 기쁨을 기원하며 여러분의 인물됨과 삶의 모습들이 이야기에 고스란히 녹아들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후에 읽는 이들로 하여금 지금의 시대적 현실 혹은 삶의 현장이 생생히 전달되고 음미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 그럼 이제 그 긴 여정을 위해 우리 함께 내딛어 봅시다!

1387, 어느 따뜻한 사월의 봄날,
Geoffrey Chaucer


3. KNIGHT를 소개합니다.




평가 1. 기사의 이야기는 보카치오와 보에티우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인용하고 있었다!

기사의 이야기는 첫 이야기 치고는 여러 모로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그가 한 이야기는 얼핏 듣기에는 당시에 성행하던 로맨스 장르의 한 종류처럼 들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사의 이야기는 실제로 당대 사람들이 즐겨 읽었던 로맨스 작품인 보카치오의 ‘테세이드(Boccaccio's Teseide)’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카치오의 테세이드가 장장 10000줄이 넘어가는 것에 비해, 기사의 이야기는 글로 썼을 때 2500여줄 정도면 쓰여 질 수 있을 만큼 대폭 짧아진 길이의 이야기인 듯 해보였다. 또한 보카치오의 이야기가 보다 정통적인 로맨스 장르로 읽힐 수 있다면, 기사의 이야기는 이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는 기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모종의 재치와 코믹스러움을 가미했기 때문이리라. 즉, 기사는 기본적으로 테세이드와 거의 비슷한 줄거리를 따라 자기 이야기를 전개시켰지만, 같은 상황들을 전달할 때에도 이 모든 진지한 상황들을 영웅적인 서사로 승화시키기 보다는, 매번 궁극적으로는 코믹한 어조로 마무리 시키고 있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an inclination for comic sinking, instead of heroic rising).

기사의 이야기는 또한 후고전기 철학자였던 보에티우스의 ‘철학이 주는 위로(Boethius' The Consolation of Philosophy)’ 에서 인용된 부분들을 많이 담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로맨스 서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심오한 철학적 사유들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테면 아르키타가 죽기 직전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내지르는 한탄이 그렇다. 아르키타는 ‘이 세상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대체 무엇을 원하는가? 한 순간에 사랑을 얻고, 또 한순간에 차가운 무덤에 놓이게 되는 구나! 온연히 혼자, 아무런 동행자도 없이!(What is this world? What does man ask to have? Now with his love, now in the chilling grave, Alone, and with no kind of company!)’ 테세우스의 아버지 아에게우스(Aegeus)가 아르키타의 죽음으로 인해 낙심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부분도 그렇다. 아에게우스는 이야기에서, 너무나도 많은 행복과 슬픔, 슬픔과 행복의 연쇄를 보아 왔기에, 이와 같은 세상의 끊임없는 흥망성쇄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who understood the world's transmutations, Having seen so many of its ups and downs, Joy after woe, grief after happiness;’) 또한 기사의 이야기에서 아에게우스는 말한다. ‘그 어떠한 사람도, 이 세상에서 어떤 식으로든 살아보지도 않고 죽은 사람은 없듯이, 이 지구에 살아온 그 어떠한 사람도, 죽지 않은 사람은 없네. 이 세상은 슬픔의 연속일 뿐이네. 우리는 그것을 이리저리 여행하는 순례자일 뿐. 세상의 모든 아픔들은 죽음으로서 비로소 끝을 맺는 것이라네. (Just as no man has ever died, said he, who has not lived in this world in some way, just so there never lived a man, he said, Anywhere on earth, but at some time was dead. This world is but a thoroughfare of woe, And we are pilgrims, travelling to and fro. All earthly troubles have an end in death.)’ 이러한 이야기 속의 다양한 철학적 성찰들은, 대부분 보에티우스의 글에서 인용된 부분들임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평가 2. 기사의 이야기는 대칭적이고 치밀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사의 이야기는 또한, 쉽게 내뱉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대칭적이고 치밀한 구조(symmetrical structure)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와 같은 대칭성은 두 주인공 기사 팔라몬과 아르키타가 끊임없이 함께 묶여 생각되는 ‘한 쌍’이자 서로에 대한 거울의 상(mirror image)인 마냥 묘사되는 점만 봐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야기의 여러 대목에서, 두 사촌의 싸움 바로 다음에는 그와 대비될 만한 특별한 종류의 우정관계(테세우스와 페로테우스 간의)가 제시 되는 식의, 서로 상반 되고, 비교가 가능할 만한 내용이 연이어 나오는 부분들이 많다. 이야기의 전체적 구조 또한, ‘(테세우스의)결혼 → 정복 → (테베스에서의)장례식’에서 시작해, ‘대결(정복과 유사) → (아르키타의)장례식 → (팔라몬과 에밀리의)결혼’으로 끝나는 식의 비교적 대칭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역시 일행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기사이니 만큼 기본적인 학식도 겸비하고 있어, 일견 원작 테세이드 보다는 코믹할지 몰라도, 일행 중 다른 어떤 이들 보다도 더욱 정교하고 고상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가 3. 기사의 이야기에는 시대착오적인(anachronistic) 디테일들이 많았다!

기사의 이야기는 고대 희랍, 로마의 신화적 전통과 중세의 기독교적 전통이 이리저리 짬뽕되어 있는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는 고대 희랍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 중세적 세계관 및 중세시대의 천문학적 전통들을 반영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희랍의 영웅인 테세우스를 공작(duke)이라 묘사하는 점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비너스, 마스, 새턴 등과 같은 희랍 신들이 등장하는 부분들은 그리스적 전통이 보다 많이 반영된 부분일 것이다. 이 시점에서 고대 희랍의 철학적 전통(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본으로 한)이 중세적, 기독교적 세계관과 연계되는 부분이 있다는 점 또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예를 들어 이 이야기 속에서의 ‘첫 번째 움직이는 자(the prime mover)’ 및 '존재의 연쇄고리(the great chain of being)'에 대한 묘사는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자, 이러한 중세 세계관에 영향을 주었던 고대 희랍 철학적 전통 또한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 번째 움직이는 자, 첫 번째 원인께서 처음 사랑의 거대한 연쇄 고리를 만드셨을 때, 그의 목적은 실로 대단했고, 그가 이루어 낸 결과 또한 대단하였도다 [...] 모든 것을 움직이는 자(mover)께서는 영원하시며 절대 변하시지 않는다 [...] 모든 부분들은 하나의 큰 전체에서 비롯된다 [...] 자연은 어떠한 부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불변하는 완전한 존재로부터 처음 파생하여, 거기에서 내려온 이후에야 타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 모든 종류의 것들, 모든 과정들은 끊임없는 연쇄(자식 낳기)를 통해 존속한다, 그것들 자체로 영원히 살지는 못하는 것이다 [...] 모든 것의 원인이신 분께서 모든 것들이 처음 파생되어 나온 원천으로 다시 그것들을 되돌려 놓게 되는 것이다(When the first mover, the First Cause above, First created the great chain of love, Great was His purpose, great the consequence [...] The mover is eternal does not change [...] That every part derives from a great Whole, For Nature did not take its beginning From any part or portion of a thing, But from a being perfect and immutable, Descending thence to become corruptible [...] Things of all kinds, all processes, survive By continual succession, do not live For ever and ever [...] who is  Prince and Cause of everything, who converts all back to its proper source from which, in very truth, it first arose?)’

평가 4. 기사 이야기의 교훈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듯하다: 운명은 신의 장난이 아니야! 무지한 인간은 운명(Fate)만을 보지만 그것이 신의 섭리(Providence)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기사가 한 이야기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뽑아낼 수 있었다. 기사는 팔라몬과 아르키타의 운명을 통해 인간이 끊임없는 행운과 불행, 흥망성쇄의 연쇄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불행이 닥쳤을 때 우리는 그것을 변덕스런 운명의 장난으로 느끼며(fortune and her fickle wheel) 분노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 ‘운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만 유효한 것이리라. 시간의 제약을 초월하신 영원불멸하신 신께서 우리의 별자리에 써놓으신 섭리(providence)를, 무지하고 유한한 인간이 크게 보지 못하고, 부분적인 단면들로만 보게 되어, 이를 운명이라 명명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인간은 자신이 알 수 없는 보다 큰 신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모든 고비들 뒤에 더 큰 뜻이 숨어 있음을 인식하며, 주어진 불행에 순응하며 겸손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기사는 말하려는 듯하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아무리 불행한 사람도, 그들의 운명의 바퀴가 언제 다시 내려가거나, 언제 다시 올라가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싸움에서 이긴 아르키타가 스스로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게 될지 어떻게 알았겠나?

평가 5. 그렇다면 기사의 이야기는 무슨 장르라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미루어 보았을 때, 이 이야기는 위에서 언급된 철학적인 교훈들을 적절히 담고 있되, 주된 줄거리는 용맹한 기사 두 명이 한 여자를 두고 싸우는 전형적 로맨스 이야기(Courtly romance)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사의 이야기를 단순한 로맨스 장르로 보기에는 그 이야기가 전달되는 어투가 조금 미묘했다. 예를 들어, 팔라몬이 에밀리를 감옥 창살을 통해 처음 보고,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는 부분에서, 이 대목이 매우 낭만적인 부분임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팔라몬이 비명을 질렀다고(‘started back with a loud cry, as though he had been bitten to the heart’)말을 한 바 있다. 팔라몬의 반응은 아무리 사랑에 겨운 인물의 반응이라 할지라도 우스꽝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아르키타가 에밀리에게 반해 팔라몬과 옥신각신 하게 되는 대목은 더욱 우스꽝스럽다. 아르키타는 팔라몬이 에밀리에게 가지는 감정은 여신에게 가지는 종교적 마음일 뿐이며, 자신이야 말로 그녀에게 진정한 인간적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Yours is no more than a religious feeling: Mine is real love, love of a human being;’) 이야기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인 아르키타가 죽는 대목에서도, 기사는 에밀 리가 소리를 내지르고, 팔라몬은 탄식했다고 말하고 있다(Emily shrieks, Palamon groans). 상황의 비극적임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연극적인 반응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보았을 때 기사의 이야기는 로맨스 장르에 대한 풍자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기사는 자신을 동행한 아들(squire)이 지나치게 스스로의 외모에 신경을 쓰고, 로맨스 소설의 주된 주제가 되는 ‘기사도 정신 발휘 및 여자 꼬시기’에 지나친 흥미를 두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들을 경계시키는 차원에서, 또 그에게 모종의 교훈을 주기위해, 겉보기에는 로맨스 이야기 같아 보이나, 이야기 내내 그 로맨스 플롯에 적절한 풍자적 거리를 두고, 결국은 사랑 및 인생의 허망함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끝나는, 이러한 풍자적인 이야기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사의 이야기는, 비판적인 유머만이 중심이 되는 풍자라 보기에는, 이를 넘어서는 진지한 철학적 사유 또한 꽤 포함하고 있기에, 그의 이야기를 단순한 코메디가 아닌 하이 코메디라 보는 것이 적합할 듯하다. 하이 코메디(High comedy)라는 개념은 베르그송의 웃음(Bergson, Le Rire)이란 작품에서 등장하는 개념으로, 코메디이되 그 주된 목적이 철학적이며 진지한 사유인 코메디를 가리키는 개념이다.(comedy, the essential purpose of which is serious and philosophical.)

평가 6. 괜히 겸손한 척 하기는...

기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우스꽝스럽다 느꼈던 점은, 그가 일종의 수사적 기법(rhetorical technique)의 일환으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사양하겠다며 빼면서 자신의 겸손함을 드러내려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는 꼭 이야기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서 결국은 아주 상세하게 모든 이야기를 하고 만다. 아, 이 기사는 근사하고 멋진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나보군, 하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아르키타의 장례식 장면에서 그의 장례식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는 이야기하기 않겠다고 하면서, 결국 기사는 그 장례식에 얼마나 다양한 나무들이 쓰였는지, 화장을 할 때 불길이 얼마나 크게 치솟았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멋진 보물들을 그 장작더미에 던졌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But how they built the pyre as high as heaven [...] Are things I'm not proposing to relate.)

나의 별점: ★★★☆☆

전체적으로 기사의 이야기는 잘 짜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신분에 걸맞게 심오한 철학적 사유들을 담고 있었다. 교훈 또한 비교적 분명히 드러나는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운명 및 인간의 삶에 대한 중세적 철학관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겸손하게 전달하려는 듯 했으나 사실은 이야기에 지나치게 개입을 하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목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싣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밀리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한 점도 수상쩍다. 이야기가 끝나가도록 그녀의 의중 및 욕망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보카치오의 ‘테세이드’의 원형이 되어준, 테세우스 및 팔라몬, 아르키타에 대한 널리 알려진 전설이 있었다면, 기사가 자신의 구미 및 자신의 목적에 맞게 그 전설을 대폭 재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별점 평가에 있어서는 별 다섯 개 중 세 개를 주겠다. 첫 이야기 이므로 너무 후하게 주기는 꺼려진다.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6. MAN OF LAW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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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Theseus)는 아마존에서의 전투에 승리한 후 그곳의 여왕 히폴리타와(Hippolyta) 결혼하고, 히폴리타와 그녀의 여동생 에밀리(Emily)과 함께 아테네로 돌아온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테베스(Thebes)에서 폭군 크레온(Creon)으로부터 지위와 남편을 잃은 미망인들의 곡소리 및 간청을 듣고 테베스를 정복하게 되고, 그 와중에 그곳의 귀족 가문의 자제들로서 그와 맞서 싸웠던 팔라몬(Palamon)과 아르키타(Arcita) 역시 크레온 측 패전병들의 시체더미에서 건져 내 평생 감옥살이를 하게끔 감금시키게 된다. 어느 5월, 감옥 근처에서 꽃을 꺾고 있던 에밀리를 본 두 사촌은 둘 모두 에밀리와 강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고, 우애로운 관계에서 라이벌의 관계로 거듭나게 된다.


테세우스의 친구 페로테우스(Perotheus)는 아르키타를 풀어주라 간청하고, 이에 따라 팔라몬은 감옥에 남고, 아르키타만이 아테네에서 추방된다는 조건 하에 감옥에서 풀려나게 된다. 둘은 모두 자신의 상황을 저주하고, 아르키타는 비탄으로 인해 자신의 얼굴이 몰라보게 달라졌음을 인식하고 다시 아테네로 숨어 들어와 테세우스의 궁정에서 일하게 된다. 팔라몬 또한 탈옥을 하게 되고, 둘은 우연히 들판에서 다시 재회하여 맞대결을 벌이게 된다.


지나가다 이를 목격한 테세우스는 사건의 정황을 알게 되고, 둘을 벌하려다 여왕 및 에밀리의 간청에 마음이 누그러져 팔라몬, 아르키타 각자에게 정해진 기간 동안 100명의 군사를 모아와 누가 에밀리를 가질지에 대해 담판을 지을 것을 명한다.


팔라몬과 아르키타는 각자 비너스(Venus)와 마스(Mars)신께 경배를 올리고(그 와중에 에밀리는 정절을 상징하는 다이아나(Diana) 여신에게 경배를 올린다), 마스신에게 간청한 대로 아르키타가 싸움에서 이기게 된다.


그러나 이에 분노한 비너스의 손도 들어주기 위해 중재자 새턴(Saturn)신은 아르키타가 이긴 직후 말에서 떨어져 죽게 하고, 아르키타가 죽기 직전 팔라몬과 아르키타 두 사촌은 이전의 라이벌 관계를 뒤로하고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게 된다. 아르키타의 장례식이 있은 후 몇 년이 지나고, 팔라몬은 테세우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드디어 에밀리와 결혼하게 된다.


5. KNIGHT'S TALE을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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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뽑기에서 첫 번째 이야기꾼이 될 사람으로 당첨이 된 이는 기사 양반이었다. 이 기사는 러시아, 그라나다, 리투아니아 등과 같은 유럽 방방곳곳에 있는 여러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용맹하게 싸워왔으며, 알렉산드리아 및 터키 등의 동방 국가에까지 진출해 기독교(Christianism)를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전사였다.

Though eminent, he was prudent and sage,
And in his bearing mild as any maid.
He'd never been foul-spoken in his life
To any kind of man; he was indeed
The very pattern of a noble knight.
But as for his appearances and outfit,
He had good horses, yet was far from smart.
He wore a tunic made of coarse thick stuff,
Marked by his chainmail, all begrimed with rust,
Having just returned from an expedition,
And on his pilgrimage of thanksgiving.
그는 비록 저명한 용사였으나 신중하고 현명했으며,
몸가짐 또한 아가씨처럼 예절바르고 절제되어 있었다.
그는 살면서 그 어떤 이에게도 험한 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는 고상하고 귀족적인 기사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외모와 옷차림을 살펴보았을 때에는,
그는 비록 좋은 말을 데리고 있었으나,
그 밖의 부분들에 있어서는 그다지 센스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투박하고 두툼한 재질로 만들어진 튜닉을 걸치고 있었으며,
그 튜닉은 온통 녹이 슨 사슬 갑옷 자국들이 나 있었다.
그는 막 원정 전투를 끝내고 돌아와
추수감사절 기념 순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듯 우리 일행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을 법한 기사 나으리는 옷차림에 있어서만큼은 검소한 편이었다. 그의 이야기에는 자신과 같은 두 용맹한 기사들이 등장했다. 그는 팔라몬과 아르키테라는 두 명의 기사가, 한 여자를 놓고 벌이는 사랑의 접전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 하게 된 것이다. 기사가 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되새겨 보아야겠다.


4. KNIGHT'S TALE을 감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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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향을 준 글들


콘스탄스에 대한 법률가의 이야기도 여러 다른 이야기들이 그렇듯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글과 이야기들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고 한다.


- Nicholas Trevet's AngloNorman tale of Constance

- Boccaccio's Decameron V.2

- John Gower's tale of Constance in his Confessio Amantis Ⅱ, lines 587-1598


등의 글들이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민간버전 이야기에는 근친상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초서는 오해를 피하고자 본 이야기 전부터 그런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구절을 넣고 있기도 하다.


  ‘You can be certain he writes not a word

  About that dreadful tale of Canace

  Who once loved her own brother sinfully;

  (And Shame on such damnable tales, say I)

  Nor tells the story of Apollonus

  Of Tyre, and how King Antiochus

  Despoled his daughter of her maidenhead (115)


둘째. 중세의 세계관


법률가 이야기에도 중세의 세계관이 반영된 표현이 다수 등장한다. 별자리가 운명을 점지한다거나 천구에 대한 이야기 등이 있다.


  Perhaps it was inscribed in that great book

  Which people call the sky, set out in stars

  When he was born, that it should be his luck,

  His destiny to die for love, alas!

  For in the stars, clearer than in a glass,

  Is written, for whoever cares to read,

  The death of every man; no doubt of it. (118)


술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사랑 때문에 죽을 것임이 이미 별자리에 새겨져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O Primum Mobile, you unpitying sphere,

  Whose diurnal eternal motion sways

  All things from east to west, and every star,

  That naturally would go the other way!

  Your thrusting set the heaven in such array

  That at the outset of this grim voyage,

  Unfavourable Mars blasts the marriage.


  Aries presages, with his oblique ascent,

  Misfortune; cadent Mars, helplessly thrust

  Out of his angle into the darkest house,

  Is in this case a baleful influence.

  O powerless Moon, how feebly you are placed

  In conjunction with no favourable sign,

  Thrust from the auspicious to the malign! (121-122)


이 구절에서는 Primum Mobile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sphere가 별과 달과 우주를 움직인다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화성과 백양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콘스탄스의 운명이 역시 별의 위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셋째. 장르적 특성


콘스탄스는 글에서 로마에서 이슬람을 거쳐 영국까지 아주 먼 거리를 여행하며 고난을 겪는다. 고귀한 인물이 고향을 떠나고 여행과 모험 끝에 다시 가족을 이룬다는 내용은 당시 많은 로맨스(Romance)와 유사한 전개를 보이고 있다. 동시에 신의 힘으로 역경을 극복하며 이교도 지역에 단신으로 건너가 고초를 겪으며 그들을 개종시키는 내용 전개는 성인전(Hagiography)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법률가의 이야기는 로맨스의 전통과 성인전의 전통이 적당히 섞인 장르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슬람교도와 결혼하게 되는 기독교인, 여성을 배에 홀로 태워 흘려보내는 형벌이나 이런 배가 마술적 힘으로 인도되는 내용 등은 당시에 이미 자주 사용되고 있던 플롯이라고 한다.


넷째. 여성에 대한 시각


여성인 콘스탄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시각을 많이 살펴볼 수 있다. 콘스탄스는 처음 로마를 떠나게 되는 이유가 이미 남성적 세계질서 속에서 거래되는 존재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여행의 방식도 대단히 수동적으로 버려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사건도 구조되고 도움 받고 우연히 만나는 식으로 발생하여 능동적인 측면이 매우 적다. 노섬버랜드 지역에서 처음 만난 성주와 그 아내 헤르멘길드를 개종시킨 장면 정도가 그나마 적극성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는 모습에서 당시 여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술탄의 어머니와 알라 왕의 어머니 두 인물이 모두 여성이며 이들이 콘스탄스의 역경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젊은 기사 역시 콘스탄스를 곤경에 빠트리기는 하지만 두 여성에 대한 묘사는 인물소개 파트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에 대한 설명은 단순히 개인에 그치지 않고 여성 비하적 이야기로 전개되므로 법률가의 이야기가 여성을 억압적으로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서의 다른 이야기들(The Oxford Scholar's Tale, The Wife of Bath's Tale 등)에서는 전혀 다른 맥락의 접근 방식으로 기존 관습을 뛰어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와 비교해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다섯째. 이야기하는 가치


기본적으로 성인전(Hagiography)에 바탕을 두고 있어 기독교적 가치들이 지속해서 강조된다. 젊은 기사가 복음서 앞에 자신의 무죄를 선언하자 미지의 손이 나타나 그의 목을 치는 장면은 기독교 신이 가장 직접적으로 개입한 장면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콘스탄스가 이교도 지역을 여행하며 시리아의 술탄은 물론이고 헤르멘길드와 그 남편, 그리고 알라 왕까지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있는 측면은 이야기가 기독교적 가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확실히 드러낸다.


또한 행복 뒤에는 불행이 찾아온다는 것을 경고하는 소재도 들어가는데 콘스탄스와 재회한 알라 왕이 1년 만에 죽고 마는 마지막 대목이 특히 그렇다. 이 외에도 순결의 가치도 강조하고 있는데 콘스탄스가 알라 왕과 결혼하고 잠자리를 갖는 장면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대단히 예외적인 상황이라며 옹호하는 데 이것은 그만큼 순결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섯째. 왜 법률가의 이야기인가?


이 이야기를 왜 하필 법률가가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건데 처음에는 도대체 왜 법률가의 이야기인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의 주제를 법률가의 생각과 연결시켜보고자 한다면 몇가지 시도가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적합해 보이는 것은 로마 사회의 질서와 기독교적 질서가 강조되는 이야기가 법률가의 정서에 부합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해볼 수 있다. 주인공 콘스탄스를 억압하는 사회질서와 기독교적 신이 부여하는 운명이 일종의 법이며 더구나 콘스탄스가 바로 이 기독교적인 질서와 로마의 사회적 질서를 전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욱 법률가의 구미에 맞았으리란 것이다.


나의 별점: ★★★☆☆


법률가 이야기는 콘스탄스가 고난과 역경을 헤치며 기독교적 가치를 전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성으로서 시대의 가치를 전파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실은 콘스탄스 역시 여행길에서 항상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더구나 콘스탄스를 가장 큰 시험에 들게 하는 두 인물이 시리아 왕의 어머니와 도네길드이며 이들이 각각 로마 황제와 알라 왕에게 제압당하는 것에서 남성 중심 세계관이 여실히 드러나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직업에서 명예를 얻은 법률가 여서 그럴까 사회 전복적이거나 새로운 시각을 말해주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보수적으로 기독교적 가치와 로마 사회라는 문명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와중에 언뜻 비추는 삶의 덧없음에 대한 인식은 흥미롭다. 당시 전통적인 글들과 비교해서 읽어보면 흥미로운 것이지만 현대적 가치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에 별 세 개를 준다.


9. WIFE OF BATH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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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황제의 딸 콘스탄스(Constance) 공주는 미모와 덕성으로 유명했다. 이 소문은 시리아 상인들을 거쳐 시리아 술탄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술탄은 그녀를 아내로 삼기를 원했고 콘스탄스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이슬람교를 버리고 기독교 세례를 받겠다고 결심한다. 콘스탄스가 시리아에 도착하고 연회를 열었으나 개종에 불만을 품은 술탄의 어머니는 기독교로 개종한 술탄과 그 지지 세력을 모두 학살하고 콘스탄스는 홀로 배에 태워 바다에 놓아버린다.

배는 영국의 노섬버랜드(Northumberland)로 흘러들어간다. 그곳에서 콘스탄스는 성주와 그 아내 헤르멘길드(Hermengyld)에게 구해진다. 이곳에서 그녀는 좋은 대접을 받고 성주와 그 아내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는데 성공한다.


그 와중에 콘스탄스에게 반한 한 기사는 자신의 사랑이 이뤄질 수 없음에 분노해 헤르멘길드를 몰래 죽이고 그 죄를 콘스탄스에게 뒤집어씌운다. 노섬버랜드의 알라(Alla)왕이 이곳에 왔다 사건을 알게되는데 기사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콘스탄스를 옹호하자 더 깊이 조사할 것을 결심한다. 가사가 브리튼어 복음서에 손을 올리고 자신의 거짓말을 맹세하자 미지의 손이 나타나 기사의 죄를 고하며 목을 내리치고 이 기적에 콘스탄스의 억울함은 해소된다. 이후 알라왕은 콘스탄스를 부인으로 받아들인다. 알라왕이 스코틀랜드의 적과 싸우러 간 동안 콘스탄스는 아이를 낳게 되고 이 소식을 편지로 전한다. 그런데 이방인을 부인으로 삼은 바를 못마땅해 하던 알라왕의 어머니 도네길드(Donegild)는 편지 내용을 조작해 아이는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콘스탄스가 요술을 부리는 존재일 것이라고 전한다. 알라왕은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편지를 보내나 다시 도네길드가 편지내용을 조작해 콘스탄스를 추방할 것을 명한다. 콘스탄스는 아이와 함께 배에 실려 다시 떠나간다.


알라왕이 돌아와 음모를 알게되고 도네길드를 사형에 처한다. 콘스탄스는 바다를 헤매다 이교도에게 잡혀 그의 아내가 될 뻔하였으나 이교도가 실랑이하다 바다에 빠져 죽는 통에 벗어난다. 그동안 콘스탄스의 아버지는 술탄의 어머니가 벌인 일을 알게되고 시리아를 침공해 복수를 하였는데 원정 후 돌아오는 길에 원로원 의원이 우연히 콘스탄스를 발견하고 로마로 데려와 보살펴준다. 시간이 흘러 알라왕이 어머니를 살해한 바를 참회하고자 로마로 순례를 오게 되는데 로마가 베푼 연회에서 알라왕은 자신의 아들 마우리스(Maurice)를 보게 된다. 알라왕은 콘스탄스를 닮은 마우리스의 모습을 보고 콘스탄스의 아이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고 원로원 의원의 집에서 그녀와 재회하고 오해를 푼다. 콘스탄스의 청에 알라왕은 로마황제와 만찬을 가지게 되고 콘스탄스는 아버지와 재회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1년 후 알라왕은 죽게 되었고 콘스탄스는 로마로 돌아와 평온하게 선을 베풀며 살았다. 이후 이들의 아들 마우리스는 황제가 된다.


8. MAN OF LAW'S TALE을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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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re was a wise and wary sergeant-at-law,
  A well-known figure in the portico
  Where lawyers meet; one of great excellence,
  Judicious, worthy of reverence,
  Or so he seemed, his sayings were so wise.
  He'd often acted as Judge of Assize
  By the king's letters patent, autherized
  To hear all cases. And his great renown
  And skill had won him many a fee, or gown
  Given in lieu of money. There was none
  To touch him as a property-buyer; all
  He bought was fee-simple, without entail;
  You'd never find a flaw in the conveyance.
  And nowhere would you find a busier man;
  And yet he seemed much busier than he was.
  From yearbooks he could quote, chapter and verse,
  Each case and judgement since William the First.
  And he knew how to draw up and compose
  A deed; you couldn't fault a thing he wrote;
  And he'd reel all the statutes off by rote.
  He was dressed simply, in a coloured coat,
  Girt by a silk belt with thin metal bans.
  I have no more to tell of his appearance.

직업인 법률가로서 갖춰야 할 것들은 다 갖춘 인물로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철저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And yet he seemed much busier than he was.” 부분에서 보듯 자신의 지위에 자부심을 갖고 은근한 방식으로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도 읽어볼 수 있다.

  Hear what is said about it by the wise:
  It's better to be dead than to be poor,
  And one whom all your neighbours will despise,
  For goodbye all respect, when you are poor!
  And here is yet another sage old saw:
  'Horrible are the lives of the penurious!'
  Beware of being driven to that pass! [...]
  For gain and profit you scour land seas;
  And like wise men, are kept informed about
  The state of kingdoms; you're a fount of news
  And stories, tales of peace, war, and debate.
  Were it not for a merchant, I'd be out
  Of tales right now. He's been dead many a year,
  But he taught me a tale, which you shall hear.

이 내용은 법률가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했던 말로, 가난한 삶이 비참한 것임을 강변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상인에게 들었다고 하면서 상인이 현명한 존재라고 추켜세우고 있다. 여기서 그가 상인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가난한 삶을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가 자본적 상하관계에 민감하고 속물적 측면이 있음을 여기서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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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1. She definitely showed "what women want"!


평가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일단 그녀에게 받은 인상부터 말해야겠다. 부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녀의 몸짓, 목소리, 표정 등에 매료되어 사실상 평가를 내리기 보다는 “와, 이 시절에 이런 목소리를 내는 여자도 있었단 말이야?!”하면서 부인의 말에 심취해 있었던 편이었다. 여장부답게 자신의 경험으로서 권위를 내세우고, 이야기 속에서 강조점을 확실히 하기위해 이런 저런 서언들을 끌어 사용하는 듯 확실히 설득력 있는 목소리였다. 남자의 입장에서 들으니, 그녀가 내세우는 “남편에 대한 완전한 장악(주도권)”이 조금 무섭고 거세게 들려오기도 했는데 그 당시 순례객들이 들었을 때는 충격이 작지 않았을 듯하다.

어찌되었든 그녀는 명백하게 “여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대해 프롤로그와 한 기사의 이야기를 통해 답을 주었으며, 교회로부터 억압받고 있었던 여성들의 성적, 심리적 욕구를 시원하게 대변하고 있었기에 통쾌한 느낌도 들었다. 여자들은 정숙하고, 성스럽고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당대의 시대적 분위기와 교회의 반 여성주의를 당차게 거부하면서 그녀는 중세의 세계관을 전복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아서왕은 부인인 왕비의 의견에 복종하고, 남자들 대신 궁정의 귀부인들이 재판관 노릇을 하는 모습, 뿐만 아니라 젊은 처녀의 신성한 정조를 범한 기사의 강간죄가 다른 늙은 여자의 구원을 받는 등 그녀의 이야기에서는 전통적인 남성의 권력과 기존의 가치관이 주도권이 역전되는 것을 잘 보여준다.

평가 2. 성경이나 서적들에서의 인용과 해석이 의심스러운데...

그녀는 분명 설득력 있는 달변가이다. 그녀의 말은 물이 흐르듯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의심해볼 만한 부분들을 놓치기 일쑤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것은 과연 부인이 주장을 확고히 하기 위해 가져오는 성경이나 책의 구절들의 맥락이 정말 부인의 이야기와 맥이 일치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들이다. 그녀의 여러 차례의 결혼과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바스 부인은 성경에 밝혀진 하나님의 말씀을 세심하게 인용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종종 혼동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가 갈릴리 가나의 결혼식에만 오직 한 차례 갔다는 사실로 결혼은 한 번만 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므로 그녀는 그리스도가 가나의 결혼식에 참석한 의미를 왜곡하고 있다. 또한 그녀가 하는 “살아가는 동안 남편에 대한 권리는 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말은, 고린도전서 7장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사실 이 말은 여성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동일하게 대구를 이루며 말해지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 입장에 유리한 말만 가져와 쓰고 있다.

더 재밌는 것은 여성 권력을 피력하는 부인이 주장의 대부분의 근거를 두고 있는 책이, 당시 유명한 로마의 반 여성주의 신학자 St. Jerome의 책이라는 것이다. 그 속에는 여 수녀원장인 Heloise를 비롯해 Tertullian, Chrysippus 등 여성 혹은 결혼에 대해 부정적, 공격적 태도를 지닌 대표적 인물들의 글들이 수록되어있다.

물론 이런 사실들로 인해 그녀가 생각이나 판단력이 모자라거나 우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성경 지식은 자신의 노력이나 독서 경험에 의한 것 보다는 책을 좋아하던 다섯 번째 남편에게서 어떻게 들었거나 또 자신이 읽었던 부분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머릿속에 저장했기 때문에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평가 3. 당당하고 뚜렷한 주관, 하지만 결국 시대의 한계 내에 있는 애처로운 모습도.

그녀는 발칙하고 항상 당당하지만 한편으로 애처롭기도 했다.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든 부인이고, 그가 사악한 부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들어야 하는 잔인한 상황 속에서도 이전의 남편들과는 대조되게 젊고 생기 있는 Jankin에게 제일 마음을 끌려하고 사랑과 재산 등을 바치려는 모습이 그러했다. 그녀는 당당하게 여성의 주도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주도권을 보장받는 즉시 남편에게 희생하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도, 그 늙은 여인에게 결정권이 넘어간 이후, 이야기의 결말은 결국 “그(기사 남편)에게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있도록 (그녀는) 모든 일들에 있어 복종”을 하였다는 것이다. 당시에 여자들은 흔히 거의 괴물처럼 묘사되었고, 그들은 성적으로 만족할 줄 모르고 음탕하며 입버릇이 나쁜 것으로 그려졌다. 그러한 인식 가운데서 부인이 목소리를 내고 있고, 결국 그녀의 권위의 근간이 되는 경험이란 것도 중혼을 통하여 여러 명을 대상으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당시 사람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생식을 위한 성행위만이 정당화 되었던 중세시대, 여성을 거의 성녀와 악녀 두 가지로 구분하고 어찌되었건 부인 또한 성녀가 되지 못한 이상 세속적이고 타락한 여성의 카테고리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테니 상황 자체가 안타깝다 할 수 있겠다.

평가 4. 그럼에도 그녀는 매력적인 캐릭터!

그녀는 학문적이고 책 속의 낡은 교훈들보다는 경험을 선호한다. 그 시대의 사회적 관습이나 교회의 속박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박하는 주장을 펼치는 것을 피해 비난의 여지를 그나마 줄였다.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인간으로서 ‘욕구’를 숨기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본연적인 갈망을 자유롭고 여과 없이 드러내는 모습에서 용기를 높이 살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인간 마음의 심층부를 놀랍게 묘사하는 표현력은 그녀를 대단히 생기 넘치고 발랄하며 정력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비교적 엄격하고 시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순례자들에게 열려있지 않은 열정, 그리고 인생을 아우르는 힘을 허락받은 듯이, 그녀는 자신이 변화시킬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함에도 즐길 수 있는 것은 충분히 즐기는 그런 재미있고 구성진 삶을 살고 있다. 

나의 별점: ★★★☆☆

어떻게 평가를 내리다보니 부인의 이야기에서 부인 자체에 대한 나의 인상과 평가로 가고 있었다...! 음, 그녀의 이야기 자체는 몇 군데 수상쩍은 것을 제외하면 재미있고 또 일부분 교훈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교훈적인 것은 그 늙은 여인이 (갑자기 이런 설을 풀어내는 것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가난과 신분의 참 의미를 알고 덕망 있는 행위와 마음가짐을 중시하며, 주님의 은총을 기뻐하고 고난을 받아들이는 인생을 살 것에 대한 부분이 특히 그러했다. 한편 늙은 여인의 이런 말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남성의 판타지에 맞게 예쁘지만 정숙하지 못하지도 않은 그런 여자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부분에서 의아하기도 하고, 결국 강간을 했던 기사에게 별 탈 없이, 오히려 행복한 결말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마음 편하지 많은 않다. 그녀의 프롤로그에서도 드러났지만 본 이야기에 들어가니 역시나 부인에게는 주권과 자유에 대한 욕망과 동시에 남성과 당시 시대 흐름에 대한 모종의 복종성, 순종성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한계라면 한계라 말할 수 있겠다. 현대적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한계점이 분명 있기는 하지만 그 당시로서는 분명 큰 반향이었을 테니... 그녀의 주장은 확실히 shocking하다. 한편 평가자인 나 Host 역시도 남성의 입장에서 결국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이 귀결된다는 한계가 있다.


13. OXFORD SCHOLAR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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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 궁정의 한 기사가 들판을 거닐다가 처녀 한 명을 발견하고 그녀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겁탈하였다. 이 행위가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켜 아서 왕에까지 탄원이 들어가고, 그 죄가 죽음의 벌을 받기에 이르렀으나, 왕비가 개입하여 기사에게 회생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 왕비는 기사를 다시 돌려보내서 일 년과 하루의 시간을 주고 여자들이 다른 것보다도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답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가 답을 찾아 나서 돌아다녀 보았지만, 여자들의 답은 부(riches)에서 아첨(flattery)까지 다양했고, 그렇게 일 년이 지난 후 허탈하게 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에 기사는 좌절하였다.


그러던 차에 한 늙고 추한 여인이 그 앞에 나타나고 그는 그 여인에게 도움을 구한다. 그런데 그 늙은 여인은 답을 알려주겠으나 대신 자신의 요구 사항도 들어달라고 말했고, 기사의 동의 끝에 그들은 아서 왕의 궁전으로 다시 향했다.


그는 왕비 앞에서 여성들이 제일 원하는 것은 그들 남편에 대한 주권이라고 이야기 하여 목숨을 다행히 구하게 되었는데, 그 늙은 여자는 약속했던 대로 기사에게 자신을 부인으로 맞을 것을 요구했고 기사는 저항과 낙심 끝에 다음 날 결혼하게 된다.

결혼한 날 밤 침실에서 기사는 부인이 너무 못생겼고, 추하고 늙고 낮은 계층의 사람이기 때문에 불행해한다. 몸을 뒹굴고 비틀고, 그의 마음속에는 슬픔과 지독한 수치감이 들어찬다. 그러나 그 늙은 여인은 덕과 주님의 은총을 강조하며 가난과 낮은 신분이 오히려 재산보다 가치 있을 수 있다고 먼저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못생기고 늙었기 때문에 다른 남자와 놀아나 창피를 당할 염려가 없을 것이기에 정조를 지키는 훌륭한 방어막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남편을 달랜다.

이 모든 이야기 끝에, 그녀는 기사에게 자신이 못생겼지만 소박하고 진실된 부인 혹은 젊고 예쁘지만 정숙하지 못한 부인이 되는 것,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데 그는 선택권을 결국 여자에게 주고, 그 여자는 남편의 그러한 행동에 기뻐하며 아름답고 신실한 여성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What a surprise...!

그녀가 매우 예쁘고 젊게 변하여 기사가 그 모습을 보고는 환희로 가득하여 그녀에게 수천 번의 키스를 한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에게 만족과 기쁨을 줄 수 있도록 모든 일에 복종을 하고, 이렇게 죽을 때 까지 그들은 완벽한 기쁨 안에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고 한다. In perfect bliss!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바스 부인이 덧붙이기를,

[...] may Christ Jesus send
Us husbands meek and young and fresh in bed,
And grace to overbid them when we wed.
And - Jesu hear my prayer! - cut short the lives
Of those who won't be governed by their wives;
And all old, angry niggards of their pence,
God send them soon a very pestilence!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에게
얌전하고 젊고 침대에서 혈기왕성한 남편들을 보내주시기를,
그리고 또 결혼했을 때 그를 휘어잡을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그리고 - 오 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 그 중에
아내의 다스림을 받기 거부하는 자들의 숨을 일찍 끊으시기를,
그리고 돈을 꽁쳐두는 늙고 화난 구두쇠들에게는
신이 속히 전염병을 보내버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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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결혼에 관한 이야기로, 바스 부인은 다섯 번 결혼했다는 얘기로부터 결혼의 역사 이야기와 수차례 결혼에 대한 정당성을 다양한 성경 구절의 인용을 통하여 이야기했다. 성경 속 아내가 한 명 이상이었던 Abraham, Jacob, Solomon 등을 열거하며 시작하고, Christ는 완벽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못하므로, 또 자신은 ‘fine white bread’가 아닌 ‘humble barley loaf’라고 비유하면서 자신이 여러 번 결혼한 것에 대해 정당함을 부여한다. 생식 기능의 목적이 생리적 기능과 생식의 기쁨에 있는데 특히 후자를 강조한다.

첫 세 명의 남편은 늙고 온순, 부유했다고 하며, 그녀 자신이 남편들에게 가졌던 통제권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겼다. 네 번째 남편은 바람둥이로 다른 여자와 몰래 바람을 폈다고 하는데, 여러 방법으로 혹독하게 부인에 의해 쥐어짬을 당했단다. 바스 부인이 성지순례에서 돌아오니 죽어있었다는 무서운 이야기도 있다. 다섯 번째 남편은 책읽기를 즐기는 옥스퍼드 대학생 Jankin이라는 사람으로 특히 못된 여자들의 전기나 전설을 좋아 했다. 바스 부인은 네 번째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그의 다리를 보고 반하고 마음이 빠지게 되어 한 달 후 바로 결혼했다는 솔직한 얘기를... 그들 사이의 시끄러운(?) 관계에도 불구하고 다섯 남편 중 제일 사랑했다고 한다.

젊은 Jankin은 처음엔 꽤나 권위주의적 인물로 바스 부인을 통제하고 그녀가 자신에게 복종하기를 바라며 수많은 책을 그녀에게 읽어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책 “Wicked Wives”를 읽을 때 부인이 나쁜 부인들의 이야기에 화가 나 참지 못하고, 책의 몇 페이지를 찍어버리고 남편에게 손찌검을 당하게 되는데, 그 이후로 그들의 관계는 변화하게 됐다.


그렇게 물리적 폭력이 오고간 후 바스 부인에게 주도권이 넘어가고, 그 대신에 바스 부인은 그에게 좋은 아내가 되었다는데... 그러나 과연 진심으로 그 남편이 부인의 권력을 인정하게 된 것인지 알 도리는 없다.

그녀의 자서전적 이야기는 다른 순례자들과 비교해 봤을 때, 본 이야기 부분에 비해 상당히 긴 시간을 들여 이어졌다. 그녀가 자기 얘기를 하는 것과, 관심과 이목을 끄는 중심 대상이 되는 것을 즐겨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녀가 꺼낸 본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들어보자.


11. WIFE OF BATH'S TALE을 감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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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 중 놓칠 수 없는 흥미로운 인물, 바스 근처에 사는 괜찮은 여자가 우리의 순례길에 함께 했으니 그녀는 혈색 좋고 대담한 여성이었다. 외관을 보니, 천천히 걷는 말을 편안히 타고 방패같이 둥글고 폭 넓은 모자를 머리에 썼으며 큰 엉덩이에 승마용 헝겊을 덮고 발에는 날카로운 박차를 달고 있다. 특이점은 이빨 사이에 커다란 틈새가 있었던 것인데, 보아하니 질투 많고 기가 강한 여성인 듯하다. 세 차례 예루살렘에 다녀오고, 로마, 볼로냐, 콤포스텔라의 성 제임스 사원, 쾰른 등 많은 외국여행을 했다.

Bold was her face, handsome, and red in hue.
A worthy woman all her life, what's more
She'd had five husbands, all at the church door,
Apart from other company in youth;
No need just now to speak of that, forsooth. [...]
In company she liked to laugh and chat
And knew the remedies for love's mischances,
An art in which she knew the oldest dances.
그녀의 얼굴은 강렬하고, 잘 생겼고, 혈기가 돌았다.
평생 훌륭한 여성으로 살았으며, 게다가
교회에서 정식으로 결혼한 남편만 다섯이었다.
물론 젊을 때 같이 놀던 놈팽이들을 제외하고이지만
지금 그 얘기를 할 필요는 없으니 넘어가자. [...]
사람들과 있을 때는 웃고 떠드는 것을 좋아했으며
사랑의 기술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춤사위들까지 꿰고 있었으며
사랑에서 오는 불운에 대한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

거의 그 시대의 신여성으로 그리고 중류계급 부인 대표의 모습을 하고 남성스러운 모험심과 적극성, 욕정이 넘친다. 이 여성은 교회에서만도 다섯 번이나 결혼을 했는데, 남편의 속박을 벗어나 자신의 욕망만족을 위한 순례 여행을 이번에 또 올랐다고 말하는 자유분방한 여성이었다. 이 부인이 보이는 성격과 외모만큼이나 그녀의 이야기도 매우 당차고 색다른 것이었으니, 주요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부인은 자신의 인생과 결혼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누구보다고 길고 흥미롭게 풀어나갔다. 그녀는 결혼과 성에 대해서 그럴듯한 권위와 자격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실컷 늘어놓았는데, 그것부터 조금 들어보자.


10. WIFE OF BATH의 과거를 들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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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이야기를 전에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 있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따져보니 보카치오(Boccaccio)의 데카메론(Decameron)에 나왔던 이야기였다. 이후 페트라르카(Petrarch)가 라틴어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그 번역본과 Le Livre Griseldis라는 불어 번역본을 참고해서 이야기를 구성한 것 같다. 내가 알던 이야기보다 월터 후작의 비합리적인 의심이나 시험의 강도, 그리젤다의 순응적인 태도 등이 강조되었고, 그리젤다의 옷차림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부분이 많이 늘어났다. 학자는 본인의 옷차림을 손 볼 생각은 않는 주제에 옷 이야기를 참 많이 하는 것 같다.

학자는 이야기를 끝마치면서 이 이야기의 교훈을 직접 설명해 주었는데, 뭇 여성들이 그리젤다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젤다라는 일개 여성이 일개 개인에게도 이렇게 순종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신의 섭리에 그처럼 인내심을 갖고 순응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친절하게 일러 주었다. 그리젤다와 같은 여성이 우리 주변에 실재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면서.

    But that everyone, whatever his degree,
    Should be as steadfast in adversity
    As Griselda.' That's why Petrarch tells
    This tale, and in the loftiest of styles.
    For if a woman was so patient
    To a mere mortal, how much more ought we
    Accept what God sends us without complaint,
    For it is reasonable, sirs, that He
    Should test what He has made.
    그 지위가 어떻게 되었든 모든 사람이
    고난과 고통의 상황에서 굳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리젤다와 같이.' 페트라르카가 이 이야기를
    멋드러진 스타일로 전해주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즉, 한 여성이 이토록 인내심을 가지고
    한 개인에게 순종했다면, 우리는 더욱이 얼마나
    신이 우리에게 보내는 것을 불평 없이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왜냐하면, 여러분, 신이 자신의 피조물을
    시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부분이 좀 미심쩍다. 이 이야기가 정말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욥(Job)이나 성모 마리아처럼 온갖 고난을 견디며 신이 내려줄 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종교적 비유로 의도된 것이라면, 왜 학자는 대놓고 이런 풀이를 우리한테 직접 해주었을까? 저런 방향으로 생각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얼마든지 끼워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다른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이야기의 의미를 한 방향으로 고정시켜버려서 우리가 추측하지 못하게 교란시키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젤다는 우리 모두(Everyman)를 대표할 정도로 일반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너무 심한 시험에도 너무 얌전히 순종하는 바람에 오히려 이상해 보일 정도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전형적인 여성상도 아니다. 아이들을 빼앗아가서 죽이려 드는 남편을 가만 놔두는 것을 보면, 어쩌면 모성애조차 부족해 보인다. 자신과 월터가 맺은 관계의 조건에 철저히 충실하게 임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인간적인 감정의 영역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젤다는 월터가 시험해올 때마다 항상 굉장히 논리적으로 자신이 순종해야 할 이유를 조목조목 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종교적인 순종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정말 무슨 계약의 이행 같다. 학자는 결혼을 격정적인 사랑의 장보다는 확실히 철저한 계약-종속 관계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고, 이야기의 드라마도 이 계약의 한계를 찔러보는 식으로 진행되지 어떤 진정한 감정의 깊이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인 비유의 맥락에서 볼 때, 우리는 정말 신과 맺은 약속 때문에 순종해야 하는 것일까? 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과 감동이 아니라? 신은 월터처럼 일부러 아픔을 안겨주기도 하는 존재인가? 심지어 욥의 이야기에서도 직접 고통을 선사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신의 허가 하에 행동하는 사탄이었다. 월터는 신인가 사탄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결혼 얘기가 나온 김에 더 얘기해 보자면, 학자는 확실히 바스 부인에 대한 일종의 대답으로 이런 이야기를 선택한 것 같다. 바스 부인이 해준 이야기는 사랑에서 나오는 권력관계의 유연성과 이동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그 주인공들은 (마치 바스 부인 본인처럼) 쾌락과 지배력을 추구했지만, 학자의 이야기에는 사랑이라는 이름 하의 일방적인 권력관계, 그리고 고통을 견뎌내는 인내심과 순종의 미덕을 강조했다. 결혼의 본질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다. 학자는 바스 부인이 읊은 본인 과거의 이야기가 못마땅했던 걸까? (바스 부인이 좀 파격적이기는 하다만.) 바스 부인과 같은 여자들에게 열심히 생각대로 해 보라고, 남편에게 순종하지 말고 남자를 울고불고하게 만들라고 부추기며 부른 마지막 노래는 학자의 지금까지의 행동거지를 생각해보면 좀 깨기까지 하는데, 그 노래는 진심이었을까, 비꼬는 것이었을까? 그리젤다와 같은 여자는 요즘 찾아볼 수 없다는 이야기는 그리젤다라는 인물의 극단적인 비현실성을 인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요즘 여성들'이 타락하고 퇴행했다고 욕하는 것일까? 학자 이 양반은 말이 번드르르해서 그렇지 도무지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나의 별점: ★★★☆☆

일단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피곤하게 구는 월터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순종하는 그리젤다도 답답해서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별 하나를 뺀다. 또 마지막에 자기 멋대로 자기 이야기에 해석을 달아버렸으므로 별 하나를 더 뺀다. 하지만 재미는 별로 없었어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기에 더 깎지는 말아야겠다.


16. PARDONER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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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살루초(Saluzzo)의 후작 월터(Walter)는 통치자로서는 훌륭했지만 너무 오래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버텨오다가 백성의 간곡한 설득 하에 드디어 결혼을 하기로 한다. 그가 백성에게 내건 조건은, 백성들이 자신이 결혼상대로 누구를 선택하든지 전적인 지지와 신뢰를 주는 것이다. 이에 월터는 외모와 성격은 훌륭하지만 별 볼 일 없는 배경의 시골 아가씨인 그리젤다(Griselda)를 찾아간다.


그리젤다는 아버지를 충실히 보살피며 쉴새 없이 부지런하게 일하는 마음씨 고운 아가씨였는데, 월터는 왔다갔다하면서 그녀를 눈여겨 본 바 있었다. 월터는 그리젤다의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은 뒤 공식적으로 청혼을 하고, 목숨까지 담보로 하는 무조건적인 충성의 약속을 받아낸 뒤 원래 입고 있던 비루한 옷을 벗기고 새로이 화려하게 치장시켜 자신의 성으로 데려간다.


그리젤다는 무척이나 훌륭하게 후작부인 역할을 해낸다. 그리젤다의 출신이 비천하다는 사실 따위는 모두 잊어버리게 될 정도로 기품 있고 지혜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먼 나라에서도 그녀의 유명세를 듣고 얼굴을 보러 온다. 심지어 월터가 자리를 비웠을 때 순조롭게 대신 통치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 노릇을 한다. 하지만 첫 아이인 딸을 낳고 나서 월터의 마음에는 이상한 욕망이 돋아, 그리젤다를 굳게 믿으면서도 그녀의 충성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은 변태적인 충동에 휩싸인다. 월터는 그녀에게 자신이 그녀를 어떻게 미천한 지위에서 이 자리까지 오게 했는지, 또 결혼할 당시에 그녀가 어떤 서약을 했는지를 상기시키며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백성들이 험담을 한다는 빌미로 아직 갓난아기인 딸을 빼앗아가겠다고 한다. 그리젤다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태연히 대답한다.


    'All lies at your disposal, sir,' she said,
    'What you wish shall wholeheartedly be obeyed.
    My child and I are yours; and you may kill
    Or spare what is your own; do as you will.'
    '모든 것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어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온 마음 다해 순종하겠어요.
    내 아이도 나도 당신의 소유이니, 당신은 죽이거나
    살리거나 자유롭게 하실 수 있어요. 뜻대로 하세요.'

이에 월터는 험상궂은 군인을 보내 잔인하게 아기를 데려가고, 죽인 척 하며 자신의 친척 집으로 빼돌린다. 그리젤다는 태도의 변화 없이 계속해서 훌륭한 부인 노릇을 한다. 월터의 욕망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아서, 두 번째로 태어난 아들도 똑같이 빼앗아가고, 급기야는 그리젤다와 파혼한 뒤 젊고 명망 높은 여자와 재혼하겠다고 선언하지만 그리젤다는 여전히 반항하는 기색도 없이 버티며 끝까지 충성을 지킨다. 심지어는 재혼식 연회장과 신혼방까지 그리젤다가 직접 꾸미게 시키지만 그녀는 오히려 결혼을 축하하고 새로운 신부의 미모를 칭찬하며 월터에게 새 부인에게는 자신에게보다 좀 더 부드럽게 대해줄 것을 부탁하기까지 한다.

월터는 이내 모든 의혹을 접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으며 사실대로 모두 털어놓는다. 재혼식장에 그가 데려온 아이들이 여태 무사히 다른 나라에서 지내다 온 그녀의 딸과 아들이라는 것까지 밝혀지자 그리젤다는 기쁨에 겨워 기절하고 만다. 부부와 두 아이가 다시 화합되고 월터와 그리젤다는 훌륭하게 통치하며 행복하게 살다 죽고, 딸은 시집 잘 가고 아들은 대를 잘 잇는 모습을 그리며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15. OXFORD SCHOLAR'S TALE을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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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옥스포드에서 온 그 학자는 직업도 없고 돈도 없고 말조차도 별로 없고 책만 읽는 신중한 남자였다. 알고 보니 그가 사랑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서들도 본인의 돈으로 산 것도 아니고, 교육비도 본인의 돈으로 댄 게 아니었다고 한다. 성격 좋고 능력 좋은 주변 친구들한테 신세를 많이 진 모양이다. 점잖기 그지없는 양반으로, 옷은 다 해지고 타고 있는 말도 염소인지 나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불쌍한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입만 열면 고상하기 짝이 없는 말만 흘러나왔다. 사람이 글을 많이 읽으면 확실히 머릿속에 든 것이 달라지나보다. 얘기하다보면 은근 가르치려 드는 느낌이 나 거슬리는 순간도 있었다. 자기가 소크라테스인 줄 아는 것 같다.

    There was a scholar from Oxford as well,
    Not yet an MA, reading Logic still;
    The horse he rode was leaner than a rake,
    And he himself, believe me, none too fat.
    But hollow-cheeked, and grave and serious. [...]
    Learning was all he cared for or heed.
    He never spoke a word more than was need,
    And that was said in form and decorum,
    And brief and terse, and full of deepest meaning.
    Moral virtue was reflected in his speech,
    And gladly would he learn, and gladly teach.
    옥스포드에서 온 학자도 한 명 있었는데,
    아직 학업은 완료하지 못하고 논리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가 타고 있는 말은 갈퀴보다 비쩍 말랐으며
    내 말을 믿으시라, 본인도 절대 통통하진 않았고
    양 볼이 푹 패인 핼쓱한 얼굴에 엄숙하고 진지했다. [...]
    그가 원하고 신경 쓰는 것은 오로지 배움 뿐.
    필요 이상의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입을 열면 항상 멋드러진 형식에 예의를 차려서
    짧고 간결하게, 심오한 의미로 가득찬 소리만 했다.
    그의 말에서는 도덕적인 미덕이 드러났고
    항상 기꺼이 배우고, 또 기꺼이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른 순례자들을 보니 자기네들끼리 이 학자 양반을 두고 뒤에서 시시덕거리곤 하는 모양이었는데, 혼자 점잔 떠는 것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순례자들이 해 주는 이야기에서 학자 캐릭터가 종종 등장했는데, 하나같이 썩 멋진 이미지는 아니었다. 방앗간 주인 로빈은 이야기에 니콜라스라는 학자를 등장시켰는데, 지식을 여자 꼬시는 데에 쓰는 음흉하고 가벼운 호색한이었다. 바스 부인은 자기의 다섯 번째 남편도 학자였다고 얘기하면서, 그 양반이 여자를 험담하는 책을 항상 달고 살아서 자기랑 한판 크게 한 적 있다고 했는데, 딱 보니 연상의 누나한테 잡혀 살면서 눌린 자존심을 그렇게라도 세우려고 하던 모양이다. 이 얘기가 나왔을 때 학자 양반의 얼굴이 썩 좋지 않았던 걸로 보아, 자기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바스 부인이 자기 차례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나서 계속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양새가 딱 자기가 어떤 얘기로 바스 부인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까 고민하고 있는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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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doner는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좋은 일을 하는걸까?

Pardoner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For though myself be a ful vicious man
A moral tale yet I yow telle kan.
내 자신은 이렇게 죄 많은 인간이지만
여러분들에게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Pardoner의 이야기는 확실히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한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의 예를 들며 탐욕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Pardoner의 이야기는 신자들에게 도덕적인 교훈을 주는, 긍정적인 것일까? 그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상당한 힘을 가진 "좋은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사실 그는 신도들의 잘못이나 죄를 고쳐주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의 경제적 이득만을 위해 설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물들을 팔기 위해, Pardoner는 탐욕은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말로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시에 그걸 갖고 싶어하는 신자들의 탐욕을 이용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Pardoner의 말을 듣는 신자들이 탐욕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느끼고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게 되기만 하면 Pardoner의 의도가 나빠도 상관이 없을까? 아니면 진정한 교훈이라면 그것을 전하는 사람의 의도도 선해야만 하는 것일까?

Pardoner 성격 정말 특이하다!

Pardoner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다른 여행객들과는 달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인식하고 있고 자신의 악행을 당당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고고한 척 하며 끝까지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자신의 사악한 속임수들을 모두 공개한다. 위선과 거짓을 일삼고 있으면서 자신의 위선과 탐욕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가장 정직하게 고백한다. 그리고 이렇게 교활하게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미 자신의 속임수를 다 공개한 사람들에게 다시 똑같은 속임수로 유물을 팔려고 하니 황당하다. 흥미로우면서도 의중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왜 그렇게 자신의 악행을 공개하는 것일까?

Pardoner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자신의 악행을 공개한다. 왜일까? 그가 있는 상황이 설교를 하는 상황이 아니었고, 이야기의 대상이 앞으로 다시는 보지 않을 여행자들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는 여행객들 모두들 적나라한 이야기까지도 감추지 않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Pardoner 역시 그렇게 속임 없이 다 이야기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생각도 있었다. 서시 부분에서, Pardoner가 거세당한 내시거나 동성애자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언급했었다. 그런데 정작 그가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그런 요소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Pardoner가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을 감추기 위해 더 강하게 자신의 위선과 악행을 그토록 당당하게 드러낸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나의 별점: ★★★☆☆

Pardoner... 자신의 악행을 당당하게 공개하고 다른 사람의 심리를 움직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등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Pardoner는 ‘탐욕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계속 이야기하지만, 유물을 팔려면 듣는 사람들의 탐욕을 자극해야 하고 또한 그 이야기를 하는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탐욕을 추구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그나저나 탐욕을 멀리 하라고 소리 높이는 이가 실은 누구보다도 탐욕스럽다니. 어느 시대든, 법률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다른 누구보다도 법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이 다른 누구보다도 평화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있다. Pardoner를 보면서 그런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Pardoner가 지금까지 저질러온 행동을 보면 세상에 사악하다 사악하다 이렇게 사악한 사람 처음 봤다. 그런데 나쁜 짓을 이렇게도 당당하게 하니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 사람 참 단순하다.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자기가 사용하는 속임수를 다 공개해 놓고선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그 사람들에게 또 똑같은 방식으로 유물을 팔려고 하다니 황당했다. 흥미로운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이 사람의 탐욕을 생각하면 후한 점수를 주지는 못하겠다. 그래서 별점 세 개.

Pardoner는 화려한 말발로 거침없이 모든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운 인물이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할지?



0. 자, 그럼 다시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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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doner(면죄사)는 여행자들에게 자신의 일에 대해 소개를 한다. 그는 설교를 할 때 주교님의 도장이 크게 찍혀있는 위임장과 교황님과 추기경 등이 준 신임장을 보여주는데, 이는 자신의 설교를 멋지게 보이게 하고 신도들에게 경건한 마음을 고양하기 위한 것이다. 천 조각 같은 것에 대해서도 그는 없는 이야기와 효과를 지어내어, 신자들이 그 천 조각을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거룩한 유물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런 속임수로 Pardoner는 신자들에게 헌금을 받아냈던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수법을 공개하고서 Pardoner는 탐욕과 노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옛날 플랑드르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술과 노름으로 방탕하게 살았고 과음과 폭식을 하면서 신성을 모독했다. 그러나 탐욕(술과 음식)과 노름은 큰 죄악이다. 취한다는 것은 인간의 지혜와 분별력을 무덤에 묻는 것과 같고, 노름은 거짓말과 사기와 가증스런 위증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성모독과 살인의 원인이며 시간과 재산을 탕진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마친 후 그는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느 세 주정뱅이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한 시체가 무덤으로 실려가는 종소리를 들었다. 술집 사환과 주인이 말해주기를, ‘죽음’이라고 부르는 도둑이 이 지역 사람들을 죽이고 있고 주정뱅이 그들도 변을 당하기 전에 조심해야 할 것이란다. 이 말을 듣자 세 주정뱅이는 영원한 의형제가 될 것을 약속하고서 그 ‘죽음’을 찾아 죽이러 간다. ‘죽음’을 찾으러 가는 길에 그들은 초라한 행색의 한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자신의 나이와 젊음을 바꾸려는 사람은 찾을 수 없고, 자신의 늙은 목숨은 죽음조차도 원치 않아 아직까지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 노인에게 세 주정뱅이는 무례한 언동으로 ‘죽음’이 있는 곳을 묻는다. 노인은 꼬부랑길을 올라가 참나무에 가면 죽음의 마귀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해준다. 그런데 그 참나무에 가서 세 주정뱅이는 금화 더미를 발견한다. 금화를 본 그들은 죽음의 귀신은 잊어버린다. 금화를 더 많이 차지하고 싶었던 가장 못된 주정뱅이는, 빵과 술을 사 오라는 구실을 달아 제일 어린 한 사람을 시내로 보내고서 나머지 한 사람과 함께 그를 죽일 계획을 짠다. 금화를 둘이서만 나눠 가지면 더 많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주정뱅이는 시내에 갔던 이가 돌아오자마자 칼로 찔러 죽이고 그가 사온 술로 축배를 든다. 그러나 술을 마신 그들도 죽는다. 시내로 갔던 사람 역시 금화를 독차지하기 위해 술에 독을 타 놓았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끝난 후 Pardoner는 여행객들에게 친구를 배신하고 죽이는 것은 죄악 중에서도 가장 큰 죄악이라고 이야기의 교훈을 전한다. 그런데 그런 뒤에 여행자들에게 유물과 면죄부를 팔려고 하고 이로 인해 싸움이 붙는다. 하지만 기사의 중재로 금방 다시 화해하게 된다.


18. PARDONER'S TALE을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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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of his craftm from Berwyk into Wardm
Ne was ther swich another pardoner;
For in his male he hadde a pilwe-beer,
Which that he seyde was Oure Lady veyl:
He seyde he hadde a gobet of the seyl
That Seint Peter haddem whan that he wente
Upon the seem til Jesu Crist hym hente.
일에 관한 한 베리크에서 웨어까지,
그를 능가할 면죄사는 아무도 없었다.
바랑에는 베갯잇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그것이 성모 마리아의 베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성 베드로가 물 위를 걸으려고 했을 때
예수께서 손을 내미셨던 배의 돛 한 조각을
갖고 있다고 떠들어댔다.

먼저 Pardoner의 외양을 간단히 보겠다. 밀랍처럼 노란 그의 머리칼은 얇은 아마사처럼 반짝이면서 윤기가 흐르고, 동글동글 뭉쳐 어깨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목소리는 염소처럼 작았다. 얼굴에는 수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고 방금 면도를 한 듯 부드러워서 거세당한 내시거나 동성애자일 거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고 한다.

이 Pardoner는 공덕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득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했다. 그는 어떤 식으로 달콤하게 말해야 신도들이 돈을 내놓는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책을 많이 읽어서, 쉼 없이 인용문을 쏟아내면서 자신의 이야기에 힘을 싣기도 한다. 이런 말발과 신도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교활함으로 그는 상당한 이득을 얻었다. 사실 중세 교회의 질서에서 이런 죄는 극악무도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Pardoner는 굉장히 흥미로운 인간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인식하고 있고 그걸 당당히 드러낸다. 그가 그간 해 온 일들을 보면 순례자들 중 가장 사악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위선과 탐욕을 가장 정직하게, 그것도 자발적으로 모두 고백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흥미롭다.

그리고 그는 설교 전체에서 ‘탐욕은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는 그가 해 준 이야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런데 그런 동시에 성유물이 구입자에게 더 많은 돈이 생기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걸 보면 Pardoner가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17. PARDONER'S TALE을 감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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