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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6  OXFORD SCHOLAR 이야기 평가 3
  2. 2010.06.06  OXFORD SCHOLAR 이야기 줄거리
  3. 2010.06.06  OXFORD SCHOLAR를 소개합니다.

우선 이 이야기를 전에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 있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따져보니 보카치오(Boccaccio)의 데카메론(Decameron)에 나왔던 이야기였다. 이후 페트라르카(Petrarch)가 라틴어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그 번역본과 Le Livre Griseldis라는 불어 번역본을 참고해서 이야기를 구성한 것 같다. 내가 알던 이야기보다 월터 후작의 비합리적인 의심이나 시험의 강도, 그리젤다의 순응적인 태도 등이 강조되었고, 그리젤다의 옷차림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부분이 많이 늘어났다. 학자는 본인의 옷차림을 손 볼 생각은 않는 주제에 옷 이야기를 참 많이 하는 것 같다.

학자는 이야기를 끝마치면서 이 이야기의 교훈을 직접 설명해 주었는데, 뭇 여성들이 그리젤다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젤다라는 일개 여성이 일개 개인에게도 이렇게 순종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신의 섭리에 그처럼 인내심을 갖고 순응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친절하게 일러 주었다. 그리젤다와 같은 여성이 우리 주변에 실재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면서.

    But that everyone, whatever his degree,
    Should be as steadfast in adversity
    As Griselda.' That's why Petrarch tells
    This tale, and in the loftiest of styles.
    For if a woman was so patient
    To a mere mortal, how much more ought we
    Accept what God sends us without complaint,
    For it is reasonable, sirs, that He
    Should test what He has made.
    그 지위가 어떻게 되었든 모든 사람이
    고난과 고통의 상황에서 굳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리젤다와 같이.' 페트라르카가 이 이야기를
    멋드러진 스타일로 전해주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즉, 한 여성이 이토록 인내심을 가지고
    한 개인에게 순종했다면, 우리는 더욱이 얼마나
    신이 우리에게 보내는 것을 불평 없이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왜냐하면, 여러분, 신이 자신의 피조물을
    시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부분이 좀 미심쩍다. 이 이야기가 정말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욥(Job)이나 성모 마리아처럼 온갖 고난을 견디며 신이 내려줄 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종교적 비유로 의도된 것이라면, 왜 학자는 대놓고 이런 풀이를 우리한테 직접 해주었을까? 저런 방향으로 생각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얼마든지 끼워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다른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이야기의 의미를 한 방향으로 고정시켜버려서 우리가 추측하지 못하게 교란시키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젤다는 우리 모두(Everyman)를 대표할 정도로 일반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너무 심한 시험에도 너무 얌전히 순종하는 바람에 오히려 이상해 보일 정도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전형적인 여성상도 아니다. 아이들을 빼앗아가서 죽이려 드는 남편을 가만 놔두는 것을 보면, 어쩌면 모성애조차 부족해 보인다. 자신과 월터가 맺은 관계의 조건에 철저히 충실하게 임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인간적인 감정의 영역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젤다는 월터가 시험해올 때마다 항상 굉장히 논리적으로 자신이 순종해야 할 이유를 조목조목 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종교적인 순종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정말 무슨 계약의 이행 같다. 학자는 결혼을 격정적인 사랑의 장보다는 확실히 철저한 계약-종속 관계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고, 이야기의 드라마도 이 계약의 한계를 찔러보는 식으로 진행되지 어떤 진정한 감정의 깊이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인 비유의 맥락에서 볼 때, 우리는 정말 신과 맺은 약속 때문에 순종해야 하는 것일까? 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과 감동이 아니라? 신은 월터처럼 일부러 아픔을 안겨주기도 하는 존재인가? 심지어 욥의 이야기에서도 직접 고통을 선사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신의 허가 하에 행동하는 사탄이었다. 월터는 신인가 사탄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결혼 얘기가 나온 김에 더 얘기해 보자면, 학자는 확실히 바스 부인에 대한 일종의 대답으로 이런 이야기를 선택한 것 같다. 바스 부인이 해준 이야기는 사랑에서 나오는 권력관계의 유연성과 이동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그 주인공들은 (마치 바스 부인 본인처럼) 쾌락과 지배력을 추구했지만, 학자의 이야기에는 사랑이라는 이름 하의 일방적인 권력관계, 그리고 고통을 견뎌내는 인내심과 순종의 미덕을 강조했다. 결혼의 본질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다. 학자는 바스 부인이 읊은 본인 과거의 이야기가 못마땅했던 걸까? (바스 부인이 좀 파격적이기는 하다만.) 바스 부인과 같은 여자들에게 열심히 생각대로 해 보라고, 남편에게 순종하지 말고 남자를 울고불고하게 만들라고 부추기며 부른 마지막 노래는 학자의 지금까지의 행동거지를 생각해보면 좀 깨기까지 하는데, 그 노래는 진심이었을까, 비꼬는 것이었을까? 그리젤다와 같은 여자는 요즘 찾아볼 수 없다는 이야기는 그리젤다라는 인물의 극단적인 비현실성을 인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요즘 여성들'이 타락하고 퇴행했다고 욕하는 것일까? 학자 이 양반은 말이 번드르르해서 그렇지 도무지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나의 별점: ★★★☆☆

일단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피곤하게 구는 월터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순종하는 그리젤다도 답답해서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별 하나를 뺀다. 또 마지막에 자기 멋대로 자기 이야기에 해석을 달아버렸으므로 별 하나를 더 뺀다. 하지만 재미는 별로 없었어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기에 더 깎지는 말아야겠다.


16. PARDONER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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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살루초(Saluzzo)의 후작 월터(Walter)는 통치자로서는 훌륭했지만 너무 오래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버텨오다가 백성의 간곡한 설득 하에 드디어 결혼을 하기로 한다. 그가 백성에게 내건 조건은, 백성들이 자신이 결혼상대로 누구를 선택하든지 전적인 지지와 신뢰를 주는 것이다. 이에 월터는 외모와 성격은 훌륭하지만 별 볼 일 없는 배경의 시골 아가씨인 그리젤다(Griselda)를 찾아간다.


그리젤다는 아버지를 충실히 보살피며 쉴새 없이 부지런하게 일하는 마음씨 고운 아가씨였는데, 월터는 왔다갔다하면서 그녀를 눈여겨 본 바 있었다. 월터는 그리젤다의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은 뒤 공식적으로 청혼을 하고, 목숨까지 담보로 하는 무조건적인 충성의 약속을 받아낸 뒤 원래 입고 있던 비루한 옷을 벗기고 새로이 화려하게 치장시켜 자신의 성으로 데려간다.


그리젤다는 무척이나 훌륭하게 후작부인 역할을 해낸다. 그리젤다의 출신이 비천하다는 사실 따위는 모두 잊어버리게 될 정도로 기품 있고 지혜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먼 나라에서도 그녀의 유명세를 듣고 얼굴을 보러 온다. 심지어 월터가 자리를 비웠을 때 순조롭게 대신 통치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 노릇을 한다. 하지만 첫 아이인 딸을 낳고 나서 월터의 마음에는 이상한 욕망이 돋아, 그리젤다를 굳게 믿으면서도 그녀의 충성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은 변태적인 충동에 휩싸인다. 월터는 그녀에게 자신이 그녀를 어떻게 미천한 지위에서 이 자리까지 오게 했는지, 또 결혼할 당시에 그녀가 어떤 서약을 했는지를 상기시키며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백성들이 험담을 한다는 빌미로 아직 갓난아기인 딸을 빼앗아가겠다고 한다. 그리젤다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태연히 대답한다.


    'All lies at your disposal, sir,' she said,
    'What you wish shall wholeheartedly be obeyed.
    My child and I are yours; and you may kill
    Or spare what is your own; do as you will.'
    '모든 것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어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온 마음 다해 순종하겠어요.
    내 아이도 나도 당신의 소유이니, 당신은 죽이거나
    살리거나 자유롭게 하실 수 있어요. 뜻대로 하세요.'

이에 월터는 험상궂은 군인을 보내 잔인하게 아기를 데려가고, 죽인 척 하며 자신의 친척 집으로 빼돌린다. 그리젤다는 태도의 변화 없이 계속해서 훌륭한 부인 노릇을 한다. 월터의 욕망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아서, 두 번째로 태어난 아들도 똑같이 빼앗아가고, 급기야는 그리젤다와 파혼한 뒤 젊고 명망 높은 여자와 재혼하겠다고 선언하지만 그리젤다는 여전히 반항하는 기색도 없이 버티며 끝까지 충성을 지킨다. 심지어는 재혼식 연회장과 신혼방까지 그리젤다가 직접 꾸미게 시키지만 그녀는 오히려 결혼을 축하하고 새로운 신부의 미모를 칭찬하며 월터에게 새 부인에게는 자신에게보다 좀 더 부드럽게 대해줄 것을 부탁하기까지 한다.

월터는 이내 모든 의혹을 접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으며 사실대로 모두 털어놓는다. 재혼식장에 그가 데려온 아이들이 여태 무사히 다른 나라에서 지내다 온 그녀의 딸과 아들이라는 것까지 밝혀지자 그리젤다는 기쁨에 겨워 기절하고 만다. 부부와 두 아이가 다시 화합되고 월터와 그리젤다는 훌륭하게 통치하며 행복하게 살다 죽고, 딸은 시집 잘 가고 아들은 대를 잘 잇는 모습을 그리며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15. OXFORD SCHOLAR'S TALE을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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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옥스포드에서 온 그 학자는 직업도 없고 돈도 없고 말조차도 별로 없고 책만 읽는 신중한 남자였다. 알고 보니 그가 사랑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서들도 본인의 돈으로 산 것도 아니고, 교육비도 본인의 돈으로 댄 게 아니었다고 한다. 성격 좋고 능력 좋은 주변 친구들한테 신세를 많이 진 모양이다. 점잖기 그지없는 양반으로, 옷은 다 해지고 타고 있는 말도 염소인지 나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불쌍한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입만 열면 고상하기 짝이 없는 말만 흘러나왔다. 사람이 글을 많이 읽으면 확실히 머릿속에 든 것이 달라지나보다. 얘기하다보면 은근 가르치려 드는 느낌이 나 거슬리는 순간도 있었다. 자기가 소크라테스인 줄 아는 것 같다.

    There was a scholar from Oxford as well,
    Not yet an MA, reading Logic still;
    The horse he rode was leaner than a rake,
    And he himself, believe me, none too fat.
    But hollow-cheeked, and grave and serious. [...]
    Learning was all he cared for or heed.
    He never spoke a word more than was need,
    And that was said in form and decorum,
    And brief and terse, and full of deepest meaning.
    Moral virtue was reflected in his speech,
    And gladly would he learn, and gladly teach.
    옥스포드에서 온 학자도 한 명 있었는데,
    아직 학업은 완료하지 못하고 논리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가 타고 있는 말은 갈퀴보다 비쩍 말랐으며
    내 말을 믿으시라, 본인도 절대 통통하진 않았고
    양 볼이 푹 패인 핼쓱한 얼굴에 엄숙하고 진지했다. [...]
    그가 원하고 신경 쓰는 것은 오로지 배움 뿐.
    필요 이상의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입을 열면 항상 멋드러진 형식에 예의를 차려서
    짧고 간결하게, 심오한 의미로 가득찬 소리만 했다.
    그의 말에서는 도덕적인 미덕이 드러났고
    항상 기꺼이 배우고, 또 기꺼이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른 순례자들을 보니 자기네들끼리 이 학자 양반을 두고 뒤에서 시시덕거리곤 하는 모양이었는데, 혼자 점잔 떠는 것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순례자들이 해 주는 이야기에서 학자 캐릭터가 종종 등장했는데, 하나같이 썩 멋진 이미지는 아니었다. 방앗간 주인 로빈은 이야기에 니콜라스라는 학자를 등장시켰는데, 지식을 여자 꼬시는 데에 쓰는 음흉하고 가벼운 호색한이었다. 바스 부인은 자기의 다섯 번째 남편도 학자였다고 얘기하면서, 그 양반이 여자를 험담하는 책을 항상 달고 살아서 자기랑 한판 크게 한 적 있다고 했는데, 딱 보니 연상의 누나한테 잡혀 살면서 눌린 자존심을 그렇게라도 세우려고 하던 모양이다. 이 얘기가 나왔을 때 학자 양반의 얼굴이 썩 좋지 않았던 걸로 보아, 자기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바스 부인이 자기 차례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나서 계속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양새가 딱 자기가 어떤 얘기로 바스 부인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까 고민하고 있는 듯싶었다.


14. OXFORD SCHOLAR'S TALE을 감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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