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옥스포드에서 온 그 학자는 직업도 없고 돈도 없고 말조차도 별로 없고 책만 읽는 신중한 남자였다. 알고 보니 그가 사랑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서들도 본인의 돈으로 산 것도 아니고, 교육비도 본인의 돈으로 댄 게 아니었다고 한다. 성격 좋고 능력 좋은 주변 친구들한테 신세를 많이 진 모양이다. 점잖기 그지없는 양반으로, 옷은 다 해지고 타고 있는 말도 염소인지 나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불쌍한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입만 열면 고상하기 짝이 없는 말만 흘러나왔다. 사람이 글을 많이 읽으면 확실히 머릿속에 든 것이 달라지나보다. 얘기하다보면 은근 가르치려 드는 느낌이 나 거슬리는 순간도 있었다. 자기가 소크라테스인 줄 아는 것 같다.

    There was a scholar from Oxford as well,
    Not yet an MA, reading Logic still;
    The horse he rode was leaner than a rake,
    And he himself, believe me, none too fat.
    But hollow-cheeked, and grave and serious. [...]
    Learning was all he cared for or heed.
    He never spoke a word more than was need,
    And that was said in form and decorum,
    And brief and terse, and full of deepest meaning.
    Moral virtue was reflected in his speech,
    And gladly would he learn, and gladly teach.
    옥스포드에서 온 학자도 한 명 있었는데,
    아직 학업은 완료하지 못하고 논리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가 타고 있는 말은 갈퀴보다 비쩍 말랐으며
    내 말을 믿으시라, 본인도 절대 통통하진 않았고
    양 볼이 푹 패인 핼쓱한 얼굴에 엄숙하고 진지했다. [...]
    그가 원하고 신경 쓰는 것은 오로지 배움 뿐.
    필요 이상의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입을 열면 항상 멋드러진 형식에 예의를 차려서
    짧고 간결하게, 심오한 의미로 가득찬 소리만 했다.
    그의 말에서는 도덕적인 미덕이 드러났고
    항상 기꺼이 배우고, 또 기꺼이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른 순례자들을 보니 자기네들끼리 이 학자 양반을 두고 뒤에서 시시덕거리곤 하는 모양이었는데, 혼자 점잔 떠는 것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순례자들이 해 주는 이야기에서 학자 캐릭터가 종종 등장했는데, 하나같이 썩 멋진 이미지는 아니었다. 방앗간 주인 로빈은 이야기에 니콜라스라는 학자를 등장시켰는데, 지식을 여자 꼬시는 데에 쓰는 음흉하고 가벼운 호색한이었다. 바스 부인은 자기의 다섯 번째 남편도 학자였다고 얘기하면서, 그 양반이 여자를 험담하는 책을 항상 달고 살아서 자기랑 한판 크게 한 적 있다고 했는데, 딱 보니 연상의 누나한테 잡혀 살면서 눌린 자존심을 그렇게라도 세우려고 하던 모양이다. 이 얘기가 나왔을 때 학자 양반의 얼굴이 썩 좋지 않았던 걸로 보아, 자기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바스 부인이 자기 차례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나서 계속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양새가 딱 자기가 어떤 얘기로 바스 부인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까 고민하고 있는 듯싶었다.


14. OXFORD SCHOLAR'S TALE을 감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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